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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IT 기업의 출근 첫 날 풍경Posted Feb 27, 2016 10:48:29 AM

정보라

판교 근처 주민입니다. 책 ‘보는’ 걸 좋아합니다.
borashow@thegear.net

얼마 전 더기어에서는 실리콘 밸리 IT 기업의 첫 출근에 대해 알아 봤다. 어떤 회사는 책상을 만들라며 나무 판과 연장을 주고 또 어떤 곳은 날개달린 모자를 씌우거나 출근 첫날 여행을 떠나라고 돈을 주는 이상한 짓을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첫 출근날의 풍경

한국 IT 기업들에게는 이런 재미있는 전통이 없을까? 우리 나라 IT기업들의 입사 첫 날을 찾아가서 알아봤다. 

 

1. 우아하게 웃기는 '우아한형제들'



- 기사를 클릭하고 놀라신 분에게 사과드립니다. 바로 접니다. 

배달의민족을 서비스하는 우아한형제들에 입사하면 사진부터 찍어야 한다. A4에 본인의 이름 석자를 쓰고서 얼굴이 잘 나오게 찍는다. 어디서 자주 본 장면 같겠지만 절대 착각이다. (저는 착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찍은 사진은 모든 직원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 방에 투척한다. 층과 건물이 나뉘어 어디에 누가 새로오는지 모르기에 생긴 풍습이다. 사진을 올리면 격하게 환영하는 카카오톡 알림을 받는다고.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물건들을 받는다. 



우아한형제들은 이 물품을 제작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인다. 피식 거리는 웃음을 짓게 하는 쓰여진 문구에 더 공을 들였을 지도 모르겠다. 오로지 직원에게 줄 생각에 심혈을 기울이는 건 아니다. 우아한 형제들은 직접 제작한 글꼴을 활용한 각종 제품을 배달의민족 앱과 국립현대미술관 등 온오프라인에서 판다. 판매 수익금의 10%는 독거노인을 위해 쓴다. 직원에게 입사 선물로 줄 때엔 재고보다 신상 위주로 구성한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비싼 신상이 나올 때 입사하자. 

 

2. 오~ 고급지다. '레진엔터테인먼트'




레진엔터테인먼트에 출근하면 첫날 컴퓨터 상자부터 뜯는다. 업무용 노트북을 세팅하는 데 하루를 보내라는 뜻으로 이러는 건 아니다. 새 컴퓨터의 포장을 뜯는 재미를 빼앗고 싶지 않아서 라고 하는데 진실은 알 수 없다. 문구류도 멋을 추구한다. 가죽 필통과 가죽 싸개를 덧댄 수첩, 펜, 샤프, 지우개를 검고 딱딱한 상자에 넣어서 준다. 여느 회사보다 ‘뽀대’를 추구하는 디자인이다. 제조업체가 궁금하지만 비밀이란다. 

 


3. 책을 팔러 왔다면 책을 알아야지 '예스24 도서팀'



한국 최대 온라인 서점 예스24는 저울과 자를 준다. 몸무게와 허리 둘레를 규격에 맞추라는 뜻은 아니다. 상품페이지에 책 정보를 입력할 때에 맡은 책의 무게와 판형을 재서 올리라는 뜻이다. 실제로 온라인 서점의 책 상세 페이지를 자세히 보면 책 표지의 가로 * 세로 사이즈와 무게가 나온다. 출판사가 적어서 보내줘도 틀릴 때가 있고, 이 정보를 주지 않는 곳들이 있어서 예스24는 부득이 저울과 자를 직원에게 지급한다고.
다행히 일만 주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예스24가 발행하는 온라인 책 매거진 '채널 예스'의 인쇄 버전과 책 표지로 만든 탁상 달력, 예스24 상품권, 독서대를 같이 준다. 예스 24 상품권이 가장 탐난다. 

 

4. 친해지길 바라오 '카카오'






먼저 이 기사를 읽는 카카오 직원 가운데 ‘난 안 받았는데... 내가 뭘 잘못했을까?’라는 고민으로 밤잠을 설칠지 모르는 분에게 전한다. 카카오는 올 2월 새로온 직원에게 지급하는 물품을 바꿨다. 못받은 건 죄가 아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즐겁고 힘차게 가도록’ 독려하고자 이 물품을 하나로 묶어서 ‘카카오 에너지’라는 이름까지 지었다.


카카오 에너지에는 에너지를 충전할 초콜릿이 들었다. 내가 먹을 것과 동료에게 나눠줄 것 두 가지다. 동료에게 줄 양까지 마련한 데엔 출근 첫날 초콜릿을 나눠주며 인사하라는 뜻이 숨었다. 이사하면 이웃에게 시루떡을 나누며 얼굴을 익히던 우리네 풍습에서 따왔다는 게 카카오 인사팀의 설명.


 

5. 출근하면 차 한 잔 '넥슨'

넥슨은 사원증과 필기류(펜과 수첩)), 텀블러를 지급한다. 사내 카페테리아 이용권을 한 장이 아닌 여러 장 주는 게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앞서 소개한 카카오처럼 이 이용권을 가지고 동료들과 차 한 잔 마시며 가까워지라는 뜻을 담은 물품이다.


 

6. 깨끗하고 맑은 공기를... 'NHN엔터테인먼트'




NHN엔터테인먼트는 여느 회사처럼 직원에게 회사 다이어리와 노트, 달력을 지급한다. 자회사가 된 벅스의 30일 음악 상품권, 환영 메시지를 새긴 미니 화분, 게임 ‘프렌즈팝’ 루비 쿠폰, 팀원이 돌아가며 쓴 입사 환영 카드도 같이 준다. 이 구성품에 자작나무 방향제가 포함된 게 특이하다. NHN엔터테인먼트가 2013년 새로 세운 건물이어서 새집증후군 예방용으로 지급하기 시작한 물품이다. 입주하고 3년 되었는데 아직도 나오는 걸 보면 아직도 새집인가 보다.
 


7. 우주정복 해볼텨? '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는 몇 년 전만 해도 새로 입사한 직원에게 서비스 중인 게임의 계정을 받았다. 게임 회사이니만큼 월정액제 유료 게임을 무료로 열어주려고 말이다. 게임의 수익 모델이 유료에서 부분유료로 바뀌면서 이 풍습은 게임 코인을 지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엔씨소프트는 개인당 최대 3만 원어치 ‘엔코인’을 매달 지급한다. 엔코인 쿠폰 대신 직원이 결제하고 나서 결제 내역을 제출하면 정산해준다. 다른 회사라면 있던 계정도 날려 버릴테지만 역시 게임 회사는 다르다.

지금은 엔씨소프트에 입사하면 출근 첫날 컴퓨터 세팅부터 해야 한다. 개발자는 외부와 분리된 개발망까지 두 대를 세팅해야 한다. 이 작업을 하면 하루가 다 간다. 아무 것도 깔리지 않은 컴퓨터 두 대를 던져주고 하루 종일 굴리기만 하는 건 아니다. 우주정복을 목표로하는 엔씨소프트 호에 승선하는 데 필요한 여권과 표를 받는다. 이건 다른 게 아니라 놀이공원 티켓처럼 생긴 회사 건물 안내도와 수첩, 여권싸개다.


 

8. 새로 왔으면 자기소개를 해라 '라인'



라인플러스는 새로 입사한 직원에게 라인프렌즈 상품 꾸러미를 준다. 이 꾸러미는 탁상 달력과 천가방, 머그, 수첩, 수첩싸개, 인형, 펜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새 직원이 오면 금요일마다 잔혹한 신고식을 연다. 라인플러스 내부에서 ‘FNL(Friday Noon Live)’라고 부르는데 무려 1장짜리 프리젠테이션 파일로 3분이라는 억겁의 시간 동안 자기 소개하는 행사이다. 얌전하고 조신하고 수줍고 차분하고 조용한 나로서는 실로 잔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행사는 신입 신고식용으로 마련한 건 아니다. 그렇지만 이왕 모이는 김에 얼굴 익히자는 뜻에서 신고식을 겸하여 운영한다.

 

9. "상품권으로 줄게” “네앱” 네이버



네이버는 1년 전만 하여도 입사자에게 펜과 노트, 포스트잇을 담은 상자를 주었다. 사내에서는 웰컴박스라고 불렀는데 2016년부터 이 풍습이 바뀌었다. 네이버 본사 1층에 있는 스토어에서 물품을 살 수 있는 2만원 상품권을 준다. 1층 스토어는 라인프렌즈 상품과 네이버, 밴드, 웹툰 캐릭터 상품을 판매한다. 네이버 홍보팀 말로는 물품을 지급할 때보다 상품권으로 주는 걸 더 선호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역시 물품보단 상품권, 상품권보단 현금이...

 

10. 유일하게 자연스러운 컷을 보내온 '네오위즈게임즈'






이번 기사를 준비하며 업체에 연락을 했고 설정샷을 몇 컷 받았다. 29cm나 펀샵에 올라갈 법한 사진들이었다. 어느 곳은 직원에게 주려고 준비한 물품을 건네주었다. 네오위즈게임즈만 홀로, 새로 입사한 직원 책상의 리얼한 현장을 찍었다. 적나라하다 :)

사진에 보이는 물품 중 회사 생활을 소개하는 유인물을 뺀 나머지는 입사 첫날 지급하는 물품이 아니다. 가져다 주는 게 아닌, 필요한 사람이 사내 ‘비즈니스 센터’에 가서 받아오는 물품이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군에 입대하면 지하 200m 깊이의 지하 벙커에서 군화, 군복, 탱크, 전투기를 받아 온다고 하던데 그것과 비슷한가 보다. 어쨋든... 입사 7년을 맞이한 어느 직원은 첫날 받은 물건 중 이 종이 한 장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한다. 입사 날짜와 함께 찍힌 축하 메시지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고. 그 종이는 지금도 그의 책상에 붙었다. 


한국 IT 업체의 첫 출근은 대략 이렇다.
이제 막 새롭게 시작하는 새내기,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는 모든 직장인들이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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