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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승리는 실리콘밸리에 대한 공포감의 발현Posted Nov 10, 2016 2:32:09 PM

김정철

더기어 기자입니다. 모두가 쓸 수 있는 리뷰가 아닌 나만이 쓸 수 있는 리뷰를 쓰고 싶습니다.
jc@thegear.co.kr

트럼프의 당선에 대해 각계각층에서 탄식과 자포자기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왜 트럼프가 승리했는지에 대한 분석도 쏟아지고 있다. 지겹겠지만 나 역시 목소리를 보태본다. 미국의 현재가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더기어라는 매체 특성에 맞게 트럼프 현상이 실리콘밸리, 즉 디지털 경제에 대한 일반인의 반감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하고 싶다. 


디지털의 패배, 아날로그의 반격


지난 6월, 포브스는 도널드 트럼프 측, 즉 공화당의 빅데이터 마이닝 기술이 클린턴에 비해 뒤져있다고 비웃었다.

참고 링크 - 빅데이터는 도널드 트럼프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인가? (포브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민주당의 오바마 대통령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유권자를 철저히 공략해 재선에 성공했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로 민주당은 첨단 기술에 강했다. 오바마 덕분에 크게 번성한 실리콘밸리의 지지도 잇달았다. 모든 지표와 데이터 분석은 민주당과 클린턴에게 유리해 보였다. 클린턴 역시 당선이 되면 실리콘밸리에 대한 지원과 친환경 에너지에 힘을 쏟겠다고 선언했다.

그에 비해 트럼프는 실리콘밸리에 부정적인 것처럼 보였다. IT, 첨단 기술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고, 데이터 마이닝을 통한 유권자 분석도 큰 관심이 없었다. 환경? 미국 공기는 아직 깨끗한데? 트럼프는 화석연료를 아낌없이 쓰자고 독려했다.  

그리고 결과는 디지털의 패배였다. 모든 데이터 분석은 휴지조각이 됐고, 미래를 향한 기술기업들의 의지는 꺾였다. 도널드 트럼프는 더기어가 사랑하는 모든 것에 반대하며 철저하게 아날로그 유권자를 공략했고, 결국 멋지게 성공했다.


디지털 경제에 대한 공포, 그리고 반감


2016년 11월 기준으로 미국 시가총액 기업 순위의 1위는 애플이다. 2위는 알파벳(구글), 3위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차지하고 있다. 10위권 안에는 페이스북, 아마존이 포진해 있다. 소프트웨어 회사로 변신중인 GE, 투자 전문사인 버크셔 헤더웨이, JP모건을 제외하면 아날로그 기업은 엑손 모빌과 존슨앤 존슨 정도다. 한국 시가총액 10위권에 디지털, IT 기업이 삼성전자와 네이버 정도만 포함된 것과 비교하면 디지털 기업의 위상은 엄청나다.  

그러나 실리콘밸리는 미국의 자랑이기도 하지만 아날로그 세대에게는 두려움의 존재이기도 하다. 미국인들은 아이폰을 쓰고, 구글로 검색을 하고, 아마존에서 쇼핑을 하고, 페이스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실제로 이들 기업이 어떻게 작동하고, 왜 돈을 벌며, 미국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는 게 분명하다. 아이폰은 폭스콘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구글과 페이스북에 자신들이 취직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존 때문에 많은 서점과 슈퍼마켓은 망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스냅챗, 트위터는 자신들의 리그가 아니다. 

살 곳도 빼앗기고 있다. 부동산 가격 조사업체인 '질로닷컴'에 따르면 인터넷 경제의 중심지인 샌프란시스코는 2012년에 비해 67%의 땅값이 상승했으며 이미 맨해튼의 땅값을 뛰어 넘었다. 이 지역에 살던 토박이들은 분노했고, 실리콘밸리 보이콧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자신들의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고 렌트비만 비싸졌기 때문이다.

참고 링크 - “구글 꺼져버려!” 디지털 부르주아지에 대한 분노 (슬로우뉴스)

노동자들 역시 두려움에 휩싸이고 있다. 우버는 자동차가 필요 없다고 말하고, 테슬라는 심지어 운전자조차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대규모 노동집약적 산업인 자동차 산업 노동자, 300만 명에 달하는 미국의 트럭운전사들에게 공포를 주는 말들이다.

실리콘밸리가 내놓는 기술들은 대부분 인간의 필요성을 없애 버린다. 알파고는 미국인들이 게임의 룰조차 이해할 수 없는 바둑이라는 게임에서 전세계 최고수인 한국인을 4:1로 꺾어 버렸다. 드론이 배송을 대신 한다고 하고, 회계사와 의사도 곧 인공지능이 대체한다는 얘기가 매일 뉴스에 나온다. 지식인 노동자들도 공포에 휩싸일 수 밖에 없다.
올해 초에 열린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는 세계가 '4차 산업혁명'으로 전환하면서 2020년이면 500만명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고 경고했다. 듣도 보도 못한 로봇이 내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고 5년 후라는 실제적 위협으로 다가왔다. 생존이 달린 절박한 문제다. 많은 아날로그 미국인들은 아직 디지털로의 전환에 준비가 안됐고, 그 충격을 버틸 재간이 없었다.

트럼프는 이 지점을 공략했다. 실리콘밸리보다는 전통 산업에, 친환경 에너지보다는 화석 연료에, 아이폰도 미국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불법이민자는 추방해야 한다고 외쳤다. 아날로그 미국인들에게는 구세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정신 없이 불안한 미래로 달리던 미국을 '롤백' 시킬 구원자로 느껴졌을 것이다. 적어도 4년에서 8년동안은...


인종문제와 성소수자, 종교, 여성 문제


트럼프는 속지주의 국적 원칙을 폐지하고, 무슬림, 불법이민자, 원정출산, 난민 수용 문제에 대해 모두 보이콧을 선언했다. 언뜻 히틀러가 주창했던 아리안 민족주의처럼 느껴지고, 이것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미국은 제 2의 나치당이 되는 것일까? KKK단이 부활하는 걸까?
그러나 이 문제 역시 미국인의 선민의식보다는 경제적 문제가 더 깊게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 실리콘밸리는 다문화, 성소수자, 여성에 관대한 편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는 인도인이 CEO고, 애플의 팀 쿡은 성소수자며, 야후는 여성이 CEO다. 또, 수 많은 개발자들이 인도, 중국, 한국 등 아시아 계통이다. 이주민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그것도 자신들은 이해할 수 없는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드론 등을 개발하며 자신들의 일자리를 없애버린다고 한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도널드 트럼프는 다문화, 성소수자, 여성을 싸잡아 비하했다. 이 화살은 무슬림에 대한 반감, 경쟁자였던 클린턴에 대한 공격 등도 포함됐겠지만 결과적으로 실리콘밸리에 대한 일반인들의 감정도 건드렸음에 분명하다.
트럼프가 외쳤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숨은 뜻은 민족주의의 표출보다는 아날로그 미국의 부활이다. 미국에서 만든 자동차와 냉장고, 휴대폰이 전세계에 보급되고, 공장은 활발하게 돌아가며, 힙합하는 흑인 대신에 빌리조엘과 가스 브룩스가 컨트리 음악을 불러대는 아날로그의 미국 말이다. 아날로그 미국인들에게 디지털 기업들은 위대하지 않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 CEO가 중국에서 조립한 스마트폰을, 흑인광고 모델을 써서 판 후에 아일랜드에 세금 내는 기업이 어찌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단 말인가?


기술기업과 진보 정치가 해결해야 할 '기술격차'


이런 현상은 미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의 정치, 경제적 결정이 과거로 회귀하는 현상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 거의 선사시대로 돌려보내기도 했지만 이건 이상값이니 제외하더라도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트럼프 당선 등은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 또는 아날로그 시대의 종말이 많은 저항에 부딪히고 있음을 뜻한다.

많은 아날로그 세대가 길거리로 몰리고 있으며, 신기술의 급격한 발달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공포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일자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자존감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기술기업이나 디지털 세대가 해야 할 일은 이들을 비웃으며 짤방을 만들고, 페이스북으로 퍼뜨리는 게 최선이 아니다. 이들과의 기술격차, 정보격차를 어떻게 해결할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만 한다.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 세대의 충돌은 비단 세대 대결로 끝나지 않고, 때때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이번 미국 대선이 우리에게 준 정말 큰 교훈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