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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마-페이퍼, 새로 나온 두 가지 전자책 Posted Oct 12, 2015 7:39:49 PM

최호섭

객원 기자. 디지털 컬럼니스트
alllove@thegear.co.kr

전자책 시장은 얼만큼 왔을까요?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말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책 대신에 읽을 것들이 이미 너무나도 많고, 독자들도 긴 호흡의 글을 읽는 데 부담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서도 전자책은 아주 미미한 수준입니다. 서점이나 출판사들은 직접적으로 매출 규모를 밝히기를 꺼리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를 알 수는 없지만 전자책은 종이책 규모의 5%를 넘기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e잉크 단말기는 아직도 낯선 기기입니다. 사실 기기는 꽤 여러 번 나왔습니다. 2년 전쯤에는 스마트폰, 태블릿 열풍을 타고 대부분의 인터넷 서점들이 자체적인 단말기를 여럿 출시했던 바 있습니다. 꾸준히 팔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빵빵 터지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책을 유통하는 '서점'이 단말기를 갖고 가는 것이 맞다는 쪽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는 일조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결국 예스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등의 출판사는 아예 DRM을 통합하고 공동으로 앱과 단말기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아마존처럼 독자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는 어려운 게 책인 듯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e잉크 기반의 전자책 단말기가 나왔습니다. 한국이퍼브의 '크레마 카르타'와 리디북스의 '리디북스 페이퍼'입니다. e잉크 단말기는 저도 무척이나 기다렸습니다. 밝고 또렷한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는 이미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LCD는 디스플레이가 너무 밝고, 깜빡이기 때문에 눈이 금세 피로해집니다. 그래서 종이처럼 보이는 e잉크 단말기에 대한 수요는 꾸준했습니다. 책의 상당 부분을 전자책으로 바꾸기로 한 뒤로는 좋은 단말기가 절실했습니다. 그렇다고 단말기를 덜컥 내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새로운 디스플레이의 등장




한국이퍼브와 리디북스의 e잉크 단말기는 거의 '동시'라고 할 만큼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습니다. 이번에 등장한 기기는 모두 카르타 패널 디스플레이를 썼고, 300dpi 해상도를 내는 게 특징입니다. 기기야 최신 제품이니 이전 제품에 비해 좋은 건 말 할 것도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디스플레이입니다. 이번에 두 회사가 쓴 카르타 패널은 e잉크의 새로운 방식입니다. 해상도가 300ppi로 이전 e잉크 단말기들보다 훨씬 세밀하게 표현됩니다. 애초 300ppi는 종이 인쇄물과 구분이 되지 않는 해상도로 꼽혔는데 이제 e잉크 단말기가 그 선까지 올라왔습니다. 굵은 글씨는 큰 차이가 없지만 얇은 글꼴에 대해서는 확실히 차이가 있습니다. 

카르타 패널이 주는 맛도 있습니다. 이 직전의 디스플레이는 '펄'패널이라고 불렀습니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색과 잔상입니다. e잉크는 특성상 화면이 바뀌면 이전 화면의 잔상이 미세하게 남습니다. 그래서 몇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화면을 한번 리셋합니다. 껌뻑 하면서 검은 화면이 지나가는 게 바로 그겁니다. 카르타 패널은 잔상이 남는 부분만 픽셀 단위로 정리합니다. 그래서 10페이지 정도를 넘겨도 잔상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페이지를 넘길 때 글자가 있던 부분들이 순간적으로 뭉개지는 것처럼 보이긴 합니다. 신경 쓸 정도는 아닙니다. 
새 디스플레이는 해상도 차이도 있지만 잔상 문제가 덜어지면서 한결 깨끗해 보입니다. 패널은 더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로 보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두 가지 단말기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두 가지, 아니 세 가지 기기를 직접 비교해보고 싶으신 분들이 많이 계실 겁니다. 리디북스가 212ppi 해상도의 '리디북스 페이퍼 라이트'를 함께 내놓았기 때문이지요. 고민이 엄청 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기간의 엄청나게 큰 차이는 없습니다. 책을 읽는 방법의 차이는 좀 있겠네요. 



크레마 카르타와 리디북스 페이퍼의 기기적 차이는 별로 없습니다. 리디북스가 듀얼코어 프로세서를 쓰고 크레마가 싱글코어 프로세서를 썼다고는 하는데 그래봐야 텍스트를 보여주는 기기입니다. 프로세서의 성능보다 e잉크 디스플레이의 전환 속도가 더 많이 와 닿을 겁니다. 페이지가 넘어가는 속도나 책을 뿌려주는 건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디스플레이는 제가 확인한 바로는 두 기기가 같은 것을 쓰고 있습니다. 화면 크기나 해상도도 같습니다. 어떤 게 더 좋냐고 묻는 분들이 계셨는데 디스플레이는 여러 모로 비교해봐도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대신 프론트라이트를 켰을 때 느낌은 조금 다릅니다. 좋다 나쁘다의 차이보다 다른 특성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기기보다 서점이 우선 




기기의 차이보다도 지금 어떤 서점을 더 많이 쓰고 있는지가 단말기 구입의 핵심입니다. 리디북스 페이퍼는 리디북스의 전용기기입니다. 리디북스는 전자책만 파는 서점인데, 이 때문에 전자책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리디북스의 뷰어는 인기가 좋고, 이용자들이 원하는 부분들을 잘 녹여 놓았습니다. 그래서 소비자 충성도가 높은 편입니다. 리디북스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면 페이퍼는 분명 훌륭한 기기입니다. 
크레마 카르타는 예스24와 알라딘, 반디앤루니스가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이 세 서점에서 구입한 책을 모두 읽을 수 있고, 최근 서점들이 저작권 보호 장치를 통합하기로 하면서 앞으로 대부분의 서점들이 판 책이 통합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크레마 카르타는 이른바 '열린 서재'를 넣어서 안드로이드 기반의 전자책 앱들을 모두 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큰 경쟁자인 리디북스에서 구입한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리디북스는 다른 e잉크 단말기에서 쓸 수 있는 리더 앱을 배포하기도 합니다. 

이 열린 서재는 전자책 플랫폼으로서 크레마의 가장 큰 강점입니다. 아마존도 읽을 수 있고, 여러 도서관을 비롯해 일단 전자책이라면 거의 모두 읽을 수 있는 환경이 됐습니다.  
이건 e잉크 단말기의 근본적인 이유와도 연결됩니다. 자사의 서점에서 구입한 책을 더 편하게 많이 읽을 수 있도록 한 게 바로 이 e잉크 단말기입니다. 그런데 다른 서점의 책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다른 플랫폼의 e잉크 단말기에서 쓸 수 있도록 e잉크 전용 앱을 만들어서 배포한다? 이건 사실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금기시 되는 부분일 겁니다. 왜 그럴까요. 
기본적인 이유는 '서로 손해볼 것 없다'는 것일 겁니다. 서점으로서는 단말기를 팔아서 수익을 내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고, 책을 많이 파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걸 읽을 수 있는 단말기는 세상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요. 
리디북스 페이퍼는 아직 열린서재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 단계는 아닌 듯 합니다. 단말기가 나온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기에 다른 서점의 손님을 받을 준비보다 리디북스의 손님을 챙기는 게 우선입니다. 리디북스도 '한다, 안한다'가 아니라 '아직 정해진 게 없다' 정도입니다. 크게 보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리디북스도 서점별 DRM 통합의 시류를 따르지 않을까요. 


 

UX의 차이, 책이라는 본질 




그렇다고 두 단말기가 '그게 그거'는 아닙니다. 물론 기기별 차이는 있습니다. 리디북스 페이퍼의 가장 큰 장점은 하드웨어 버튼입니다. 터치스크린을 밀어 책을 넘기는 경험도 중요하지만 이것도 양 옆 버튼을 눌러 넘기는 건 즉각적이고 편리합니다. 그리고 책장은 터치스크린보다 더 빠르게 넘어갑니다. 이 버튼은 왼쪽은 이전 페이지로, 오른쪽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데 양쪽 모두 다음 페이지 버튼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또한 리디북스는 기존에 배포하던 e잉크 단말기용 리더앱 대신 페이퍼를 위한 전용 앱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UI를 더 단순하게 만들고 e잉크에 불리한 화면 스크롤을 없앴습니다. 그러다 보니 앱이 깔끔하고 책 읽기에 좋습니다. 페이퍼도 안드로이드 기기이니 e잉크용으로 이 앱을 배포하지 않으려나요. 



크레마 카르타는 UX의 일관성이 좋습니다. 이전 크레마 터치나 크레마 샤인을 썼다면 거의 똑같은 느낌으로 쓸 수 있습니다. 디자인이나 UX가 분명 더 세련되어졌지만 기존에 기기에 익숙해진 습관을 해치지 않습니다. 원래 있던 곳에 버튼과 스위치가 있다는 건 좋습니다. 
무엇보다 열린서재의 활용도가 좋습니다. apk 형태의 안드로이드앱은 모두 설치할 수 있습니다. 크레마를 두고 루팅을 한다거나 다른 앱을 깔기 위해 많은 이들이 애를 먹었는데 오히려 이것 하나로 크레마 카르타는 '안드로이드 기기'가 아니라 '책 읽는 기기'의 대명사가 되는 듯 합니다. 또 하나 크레마의 약점이라면 앱의 불안정이었는데 업데이트도 거의 매주 하면서 눈에 띄게 앱이 달라지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자, 그래서 어떤 걸 사야 하느냐고요? 원래 즐겨보던 서점의 단말기를 쓰는 게 편합니다. 전자책을 안 읽고 있었다면 어떤 서점에서 책을 살 지를 고르면 됩니다. 하드웨어가 아니라 서점을 정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리디북스라면 300ppi의 리디북스 페이퍼가 당연히 더 좋지만 212ppi의 리디북스 페이퍼 라이트도 충분히 좋은 전자책 단말기입니다.  


 

경쟁 아니라 전자책 시장의 기회 




하지만 두 기기 모두 특별히 '흠'이라고 할 것 없이 잘 나왔습니다. 두 기기를 경쟁 구도로 보는 게 재미있을 수도 있지만 전혀 경쟁 구도는 아닙니다. 양쪽 모두 서로의 단말기에 대해 긴장하고 있긴 하지만 같이 잘 되어야 한다는 반응입니다. 또한 두 기기가 같이 나오면서 관심도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소비자로서도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기기를 내어준 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양쪽 모두 단말기를 내는 데 상당히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크레마 카르타는 인터넷에 쉴 새 없이 사용기가 올라올 만큼 잘 팔리고 있고, 리디북스의 경우 구매자들이 예측했던 수요를 훌쩍 넘기면서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안타깝기도 하지만 좋은 신호임에는 분명합니다. 
전자책 시장은 아직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끝은 한참 멀었습니다. 직접적으로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제가 계속 지켜본 바로는 양쪽 모두 e잉크 단말기를 내놓는 데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소비자들의 요구는 만만치 않은데 실제로 얼마나 팔릴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기기를 만들어 판매하는 건 큰 위험이 따르는 사업입니다. 전자책으로 전환은 분명 나아지고 있지만 CD의 MP3 전환이 쉽지 않았던 것처럼 전자책 업계는 여전히 조심스럽습니다. 이번 e잉크 단말기에 대한 반응이 출판사, 저자들의 인식을 어느 정도는 바꿔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 봅니다. 

이미 전자책을 많이 읽으시던 분이라면 어떤 단말기를 살지가 고민이겠지만, 아직까지 e잉크 단말기를 살까 말까 고민하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뭘 살지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책을 많이 읽는다면 e잉크의 강점은 어떤 단말기든 보답을 할 겁니다. 혹시라도 과거 e잉크 단말기에 대해 불안한 기억을 갖고 계신다면 그것도 이미 옛날 이야기일 뿐입니다. 분명 더 높은 해상도, 더 빠른 단말기가 앞으로 나오겠지만 이 정도라면 많은 부분을 타협하지 않아도 될 수준입니다. 
중요한 건 '책'이라는 본직이고, 두 기기는 그 본질을 매우 잘 담아낸 그릇입니다. 시장에서도 안드로이드를 썼지만 부디 안드로이드 기기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참고 링크 
- 크레마 : http://www.yes24.com/24/goods/20193639
- 페이퍼 : http://paper.ridibooks.com/Intro